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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7년 6월 28일 -「한겨레 21」의 적반하장 등록일 2017.09.27 19:13
글쓴이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조회 1928
*길윤형의 페북 변명글

한 지인이 내게 「한겨레 21」 편집장 길윤형이 자신의 페북에 글을 남겼다고 퍼날라주었다. “이덕일 소장님께서 저를 정면으로 비판해 주셨습니다. 도쿄에 있을 때 〈제국의 위안부〉 논란의 한 언저리에 있었는데, 이번엔 국뽕 논란의 주변부에 서게 됐습니다. 저에 대한 일침은 ‘식민사학에 빠지면 학자고 언론인이고 사실이 아닌 얘기를 천연덕스럽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식뽕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말한 길윤형은 스스로 댓글까지 달아 놓았다. “제가 도쿄에서 써댄 기사들이 얼마나 많은데 저한테 식민사학에 물들었다고 말하면 안 되죠....느닷없이 식뽕이 되니 기분이 뭐랄까 애매합니다”(길윤형 페북)
먼저 사실 관계를 바로잡자. 첫째 길윤형은 ‘논란의 주변부’에 선 것이 아니고 ‘논란’에서 매국사학쪽의 맹렬선수로 뛰었다. 둘째 자신에게 ‘식민사학에 물들었다고 말하면 안 된다’면서 그 근거로 ‘도쿄에서 써댄 기사들’을 근거로 들었다. 논리구조 자체가 식민사학자들하고 똑 같다. ‘도쿄에서 써댄 기사들’과 매국사학의 맹렬선수로 뛴 것과 무슨 상관이 있나? 
역사관을 둘러싼 논란이 있으면 언론은 양쪽의 입장을 정리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해주면 된다. 최소한 기계적 중립을 유지하는 ‘척’이라도 하는 것이 언론이 최소한 한쪽으로 치우치지는 않았다는 변명이라도 할 수 있는 방어막이다. 그러나 길윤형이 편집장으로 있는 「한겨레 21」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시작된 이 논란에서 조선총독부 측의 맹렬선수가 되어 나와 총독부 역사관을 비판하는 학자들을 ‘사이비역사학자, 유사역사학자’라고 난도질했다. ‘ 사이비역사학의 역습’이란 특집의 제목 자체에 이미 가치관이 다 들어있는 것이다. 초록불 어쩌고 하는 닉네임을 쓰는 자칭 소설가, ‘조선총독부는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계시다’를 매일 되뇌이는 것 같은 이문영이에게 원고 청탁을 하면서 “이런 기사를 내보내면 역풍 엄청납니다. 괜찮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처음부터 독자하고 싸우려고 마음먹은 특집이다. ‘독자 퍼스트 언론, 〈한겨레 21〉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한겨레 21」이 스스로 내 세우는 구호다. 내게는 이렇게 읽힌다. ‘독자 개무시 사론, 〈한겨레 21〉 이래도 볼래?’ SNS 세상에서는 콘텐츠만 있으면 개인이 언론이 된다. 시작한지 열흘 남짓되는 나의 페북글도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기하급수적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유사역사의 공모자들?

조선총독부측의 선수로 뛴 「한겨레 21」은 ‘유사역사학의 역습’에 뒤이어 이번호에는 기자 진명선이 ‘유사역사의 공모자들’이란 장문의 기사를 또 실었다. 역시 조선총독부 기관지다. 내가 국회 동북아특위에 나가서 발언하는 사진까지 실어놓았는데, 이번에도 나를 비롯한 우리쪽의 의견은 청취하려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사이비역사’에 이어 ‘유사역사’라는 말 속에 이미 가치관이 다 들어있다. ‘유사역사의 공모자들’ 역시 ‘갈지(之)’ 자 걸음을 걷는다. 제 정신으로는 하지 못할 이야기를 하려니 걸음이 비틀거릴 수밖에 없다. 기사는 그간 나의 역사학, 즉 독립운동가의 역사학을 옹호했던 인사들을 맹비난하고, 「동북아역사지도」를 맹렬히 수호하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한겨레도 어떤 때는 유사역사학에 지면을 내주었다고 비판했다. 그 예로 한겨레가 2009년 창간 21주년 기념으로 ‘이덕일 주류역사학계를 쏘다’라는 특집지면을 주었다고 사진까지 실어놓았다. 이 특집을 쓰게 된 뒷 이야기를 좀 하겠다. 한겨레 문화부 기자 노형석은 노론사관, 조선총독부 사관 신봉자다. 그가 역시 노론사관 신봉자인 당시 한신대 교수 유봉학의 입을 빌어 나를 맹비난했다. ‘역사학자도 아닌 사람이 역사학자 행세한다’는 비난이다. 유봉학은 노론 역사학자 모임인 간송학파 일원인데, 노론 몇몇 가문이 국정을 농단하다 망국까지 초래한 세도정치가 개혁정치였다는 주장까지 하는 골수 노론학자다. 이 기사를 보고 분개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주한 연구위원이 항의를 했더니 한겨레 편집진에서 지면을 줄테니 연재해보겠느냐고 제의해 시작된 연재다. 그때만 해도 한겨레에는 문화부에 노형석 같은 노론·조선총독부 사관 신봉자도 자리잡아 한겨레 창간정신을 난도질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한겨레 창간 정신을 잊지 않고자 하는 기운이 남아 있었다. 그때 연재한 것을 손질 봐서 낸 책이 『한국사, 그들이 숨진 진실』인데, 나중 알고보니 이 책을 50권, 100권씩 사서 지인들에게 돌린 사람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에는 국회의원도 있었고, 장관을 지낸 고위공직자도 있었다. 그래서 ‘이 나라가 아직은 희망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도 이야기는 왜 빼놓나?

「한겨레 21」 진명선은 ‘유사역사의 공모자들’에서 항소심에서 나의 무죄판결을 축하하는 트위터 글을 쓴 이재명 성남시장, 내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자 「경향신문」에 ‘한국은 아직도 식민지인가’라는 칼럼을 쓴 참여정부 시절의 이정우 전 청와대정책실장(경북대 명예교수) 등을 비난하고, 필자를 고소한 김현구 교수를 옹호했다. 역시 제정신이 아니다. 그러면 이재명 성남시장이 학문의 자유를 지킨 판결에 대해서 환영하지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비판하는 이덕일은 감옥에 넣어야 합니다’라고 무죄 판결을 비판하겠는가? 노무현 정부 내의 사림파로 불렸던 이정우 전 실장이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하다가 실형 선고를 받은 나의 역사관을 옹호하지 「한겨레 21」처럼 조선총독부의 역사관을 옹호하겠는가? 내가 추후 김현구 교수의 역사관과 나를 둘러싼 재판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겠다. 충격 받는 대목들이 많을 것이다. 진명선은 이재명 시장, 이정우 실장 들을 비판하면서 「동북아역사지도」를 맹렬히 옹호했다. 진명선이 쓴 기사의 한 대목을 보자.
“이덕일 소장과 동북아특위가 제기한 동북아역사지도에 대한 ‘유사역사적 비판’은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DB)에 기반한 디지털 지도인 동북아역사지도의 특성을 감안하면 충분히 반박되는 수준의 내용이었다(진명선, ‘유사역사의 공모자들’, 「한겨레 21」)” 

그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 ‘디지털 역사지도’ 다 좋다. 그런데 독도는 왜 빠졌나? 독도 문제가 탈락의 핵심사유인데, 왜 그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와 디지털역사지도에 독도가 빠진 이유는 왜 말하지 않나? 그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의도적으로 독도를 지운 것 아닌가? 독도는 일본 것이라는 뜻 아닌가? 진명선은 왜 핵심인 ‘독도’이야기는 하지 않고 다른 엉뚱한 이야기로 논점을 흐리나? 그러니 조선총독부 기관지임을 자인하는 것 아닌가?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이 나와 중국의 요서지역에 갔다가 「동북아역사지도」의 독도 누락사건이 문제가 되자 내게 한 이야기가 있다. 5개월간의 수정 기간 동안에 지도제작 책임자들을 불러서 했다는 말이다. 전에도 했지만 조금 더 생생하게 전달하겠다. 동북아재단 이사장은, “야 이 개××들아, 대한민국 국민세금 가지고 만드는 지도에 독도는 그려와야 할 것 아니냐? 독도에 점이라도 찍어와야 할 것 아니냐, 이 개××들아.” 우리 측으로 같이 갔던 문성재 박사나 황순종 선생도 생생하게 들었고, 다른 기자도 들은 이야기다. 한 지인이 내게 박근혜 정부에서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으로 임명된 그를 뉴라이트 계열 학자라고 설명해주었다. 뉴라이트 계열 학자가 봐도 용납할 수 없는 지도가 ‘독도’를 끝내 누락시킨 「동북아역사지도」다. 다른 카르텔 언론들은 이 사실이 대중에게 드러나면서 불리해지자 발 빼기 시작하는 구조인데,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한겨레 21」은 역시 다르다.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수호하리라’
가련하다. 궁벽한 시골에 살아서 일제가 망한 것도 모르고 아직도 매일 아침 해뜨는 도쿄의 일왕 왕거(王居)를 향해 허리를 깊숙이 꺽고 궁성요배를 하는 격이다. 사방으로 눈을 부라리며 찾는다. ‘독립운동하는 놈 어디 없나?’

*대가는 뭔가?

「한겨레 21」의 길윤형, 오승훈, 진명선이 바보는 아닐 것이다. 이미 사건의 실체가 다 드러난 뒤에도 일방적 보도를 계속하는 것은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독자들, 국민들과 싸우자고 만든 특집이고, 후속 보도다.
한겨레를 보는 독자들 대부분은 이런 문제에 있어서 총독부 역사관의 편을 드는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보도를 연달아 하는 것을 이를 통해 무언가 얻는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론의 기본적인 취재윤리는 쓰레기통에 처박은지 오래고, 「한겨레」의 창간정신과도 배치되고, 독자들과 국민들로부터 무수한 비난을 받으면서도 계속 이런 기사를 써대는 것은 이를 통해 얻는 대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 대가가 뭔지, 궁금하다. 이 문제에 관심이 있는 모두가 동의하는 합리적 의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