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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7년 8월 11일 - 어느덧, 『일본서기』가 장악한 한국 고대사학계 등록일 2017.09.27 21:45
글쓴이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조회 2642
-연대부터 거짓말시킨 『일본서기』

『일본서기』라는 책이 있다. 서기 720년에 야마토왜에서 편찬한 역사서다. 그간 『일본서기』는 사료로서 가치를 평가받지 못해왔다. 연대부터 맞지 않기 때문이다. 빨라야 3세기 후반에나 시작하는 야마토왜의 역사를 서기전 660년에 시작한 것으로 1천년 이상 끌어올렸다. 그러다보니 수많은 거짓과 왜곡으로 점철되었다. 그래서 “『일본서기』는 100명이 연구하면 100개의 학설이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예를 들어 1961년에 태어난 나를 1861년에 태어난 것으로 100년을 끌어올려 『자서전』을 쓴다고 가정해보자. 박정희가 군사쿠테타를 일으키던 해에 태어난 나는 조선 철종 12년에 태어난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전문가에게 걸리면 단번에 거짓말이 탄로 난다.
-주갑제라는 마술방망이?
『일본서기』를 연구하는 일본학자들의 고민이 여기에 있었다. 먼저 연대부터 맞지 않으니 연대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등장한 고육책의 하나가 이른바 ‘주갑제(周甲制)’다. 주갑(周甲)이란, 회갑(回甲)과 같은 말로 만 60년을 뜻한다. 『일본서기』에 기록된 특정 기사를 주갑(周甲) 단위로 60년, 120년, 240년씩 끌어올려 계산하는 방식을 뜻한다. 전 세계 역사서 중 유일한 역사서 해석법이다. 
한 예를 들어 『일본서기』 「신공황후(神功皇后)」 ‘55년’은 서기 255년이다. 『일본서기』는 이해에 “백제 초고왕이 세상을 떠났다”고 말한다. 이 기사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기준서가 있어야 한다. 그 기준서가 『삼국사기』였다. 메이지 때 정한론(征韓論)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서기 255년은 『삼국사기』 백제 고이왕 22년인데, 이해 초고왕이고 고이왕이고 세상을 떠났다는 말은 없다. 『일본서기』와 『삼국사기』 중 하나는 거짓말이다. 누가 거짓말일까? 물론 『일본서기』다.

-120년을 끌어올려라

그래서 일본인 학자들은 주갑제를 동원했다. 신공 55년에 1주갑(60년)을 더하면 315년인데, 『삼국사기』 백제 비류왕 재위 12년으로서 이때도 초고왕이고 비류왕이고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2주갑 120년을 더해서 서기 375년의 『삼국사기』를 살펴보았다. 백제 근초고왕 30년(375)이다.
「겨울 11월에 (근초고)왕이 세상을 떠났다.(『삼국사기』 「백제본기」 근초고왕 30년)」
『일본서기』 신공 55년(255)조의 “백제 초고왕이 세상을 떠났다”는 해에 120년을 더해서 『삼국사기』 백제 근초고왕 30년(375)에 맞춰보니 “근초고왕이 세상을 떠났다”는 기록과 비슷해졌다. ‘초고왕’과 ‘근초고왕’은 다르지만 그냥 넘어가자. 그래서 『삼국사기』를 기준, 즉 채점표로 삼아서 『일본서기』 신공 55년은 서기 375년의 사건으로 인정받았다.

-『삼국사기』를 버리고 『일본서기』로.

그런데 어느 순간 기준서가 바뀌었다. 정한론이 등장하고, 일제가 한국을 강점한 이후 『일본서기』가 기준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서기』를 기준 삼아야 한반도 남부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신공왕후 55년(255)의 기사를 120년 끌어올려 『삼국사기』에 맞추어 보더라도 사실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이해 백제 근초고왕이 붕어(崩御)했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인 학자들은 『삼국사기』는 모두 거짓이고 『일본서기』만 사실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일본서기』의 신공 49년조까지 사실이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임나일본부설의 알파와 오메가
『일본서기』의 신공 49년은 서기 249년이다. 『일본서기』는 이해 신공왕후가 삼한을 정벌하고, 비자벌, 남가라, 탁순, 가라 등 7국을 정벌하고 임나를 설치했다고 나온다. 일본인들은 120년을 더해 서기 369년에 있었던 일이라고 주장한다. 자, 생각해보자. 백제 초고왕이 죽었다는 『일본서기』 신공 55년(255)조를 120년 끌어올려 『삼국사기』 백제본기 365년의 기사와 비교해 백제 근초고왕이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와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백 보를 양보해서 이것 하나는 인정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러면 나머지 『일본서기』 기사도 『삼국사기』와 비교해 사실여부를 가려야 한다. 그런데 이때부터 억지가 등장한다. 『일본서기』 신공왕후 기사는 120년 끌어올리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이다. 김현구 씨의 주장을 보자.
“『일본서기』에 기록된 한반도 남부경영의 주요 내용은 모두 369년 목라근자의 소위 ‘가야 7국 평정’ 내용을 전제로 해서만 그 사실이 성립될 수 있다(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55쪽)」
369년의 소위 ‘가야 7국 평정’ 내용이 바로 『일본서기』 신공 49년조를 말하는 것이다. 『일본서기』에 가야는 나오지도 않지만 김현구 씨는 『삼국사기』의 가야라고 강변하기 위해서 ‘가야’라고 슬쩍 바꿨다. 그런데 369년에 『삼국사기』는 백제 근초고왕이 태자를 보내 백제를 침략한 고구려 군사 2만 명 중 5천 명의 머리를 베고, 한수 남쪽에서 황제의 깃발인 황색 깃발을 사용했다고 전하고 있다. 『일본서기』는 369년에 근초고왕이 야마토왜에서 온 사신에게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와 『일본서기』 둘 중의 하나는 거짓인데, 물론 『일본서기』가 거짓이다. 그래서 김현구 씨가 법정에서 내가 이 모순을 따지자 “나는 “『삼국사기』·『삼국유사』는 모릅니다”라고 답한 것이다. 실제로 모른다는 뜻이 아니라 “나는 『삼국사기』는 부인하고 『일본서기』만 믿겠습니다”란 뜻이다.

-한국 학계를 평정한 『일본서기』

김현구 씨만 이런 것이 아니다. 최근 김명옥·이주한·홍순대·황순종 네 학자가 편찬한 『매국의 역사학자, 그들만의 세상』에는 『삼국사기』를 부인하고 『일본서기』만 신봉하는 대다수 한국 고대사학자들의 말이 그대로 인용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홍익대학교 교수 김태식은 “임나가라는 원래 임나(창원)와 가야(김해)의 합칭이나 「광개토왕비문」의 ‘임나가라’는 김해의 가야국을 중심한 가야 연맹 전체를 지칭한 것이라고 판단 된다”라고 주장했다. 임나가 창원이라는 근거는? 물론 없다. 있는 것은 김태식의 머릿속 생각뿐이다. 

인제대 교수 이영식은 “(북한 김석형의)분국론은 별도로 하더라도 『일본서기』에 보이는 임나일본부의 문제는 한반도 남부의 가야 지역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임이 틀림없다”라고 주장했다. 한국고대사학계가 총론으로 “임나일본부를 극복했다”고 하는 거짓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 이영식은 “현대적 국가의식을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은 오히려 『일본서기』로 다시 돌아가는 길이다……그러나 우선은 『일본서기』의 기록을 있는 그대로 보는 태도도 필요하다”라고까지 말했다. 어느덧 한국 학자들은 『일본서기』를 신주단지로 모시고, 『삼국사기』는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그래서 『매국의 역사학자, 그들만의 세상』은 이런 현상에 대해 “무서운 아이들은 무서운 부모 손에서 자란다”면서 “그냥 황국사관으로 돌아가자는 말이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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